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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xms2 2026. 2. 4.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그리스어: Κλεοπάτρα Φιλοπάτωρ[5], 영어: Cleopatra VII Philopator, 기원전 69년 - 기원전 30년 8월 10일, 재위: 기원전 51년 ~ 기원전 30년)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여왕이자 마지막 통치자였다.[주해 4]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알렉산드로스 3세의 동료)의 후손이다.[주해 5]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이후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으며, 이는 제2의 마지막 헬레니즘 국가와 알렉산드로스 3세의 통치 (기원전 336년~323년) 이후 지속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주해 6] 클레오파트라의 모국어는 코이네 그리스어였으며 이집트어를 배운 유일한 프톨레마이오스 군주였다.[주해 7]

기원전 58년,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는 당시 로마의 종속국이던 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경쟁자인 딸 베레니케 4세가 왕위 주장을 하게 된 후 로마로 추방되었는데, 클레오파트라도 이때 동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레니케는 기원전 55년 프톨레마이오스가 로마 군대의 지원을 받아 이집트로 돌아온 후 처형된다. 기원전 51년 그가 죽자 클레오파트라와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의 공동 통치가 시작되었지만 둘 사이의 갈등으로 내전이 벌어졌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의 내전 중 그리스에서 벌어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경쟁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마 독재관이자 집정관)에게 패한 로마 정치가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피했다. 폼페이우스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와 정치적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고문들의 주장대로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기 전에 폼페이우스를 암살했다. 그런 다음 카이사르는 프톨레마이오스 남매를 화해시키려고 했지만 카이사르의 조건이 클레오파트라에게 편향적이라고 판단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수석 고문인 포테이노스는 군대를 동원해 궁전에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를 포위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기원전 47년 나일강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지원군이 포위를 돌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이복누이인 아르시노에 4세는 공성을 지휘했기 때문에 에페소스로 추방되었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공동 통치자로 선언했지만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은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적인 관계는 유지했다.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46년과 44년에 로마에 방문했고, 그 때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별장에 머물렀다. 기원전 44년 (클레오파트라의 명령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암살되고 카이사르도 암살된 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리온을 프톨레마이오스 15세로서 공동 통치자로 지명했다.